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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사순절 (크리스천투데이)

Day 31 -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을 잡으려는 수백 명의 적대자들 앞에서 수제자 베드로가 칼을 빼었습니다. 대적할 수 없는 세력들 앞에서 주님을 보호하고자 했던 베드로의 용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하십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는 힘은 칼에 있지 않습니다. 폭력은 비폭력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받으셨습니다. 이 잔은 미움과 폭력과 살기를 이기고 그 모든 죄를 담당하신 대속의 잔, 십자가의 쓴잔입니다. 주님은 당당한 모습으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 잔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용감했던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며 무너지고 흔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무서운 세력 앞에서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조금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에서 주님은 겟세마네 기도(마 26:36-46, 막 14:32-42, 눅 22:41-46)를 드리십니다. 주께서 양의 피로 물든 기드론 시내를 건너며 속죄양이신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노래하며 감람산으로 들어갔습니다(마 26:30). 제자들이 이 수난의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시고 ‘돌 던질 만큼’ 떨어져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기도가 달랐습니다.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은 갈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겟세마네 기도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심한 통곡과 눈물로 드리신 기도입니다(히 5:7). 이것은 죽음의 공포입니다. 참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참 인간이신 주님께서 받으셔야 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하나님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신 주님의 기도가 참으로 정직하고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도 십자가는 고통이었기에, 공포였기에, 그 길을 끝까지 가신 주님의 사랑이 더욱 위대한 것입니다. 주께서 그 길을 가실 수 있었던 힘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 속에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 복종의 근거는 ‘아바 아버지여’라는 말 속에 있습니다. 사랑의 아버지께서 아들로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신 뜻을 신뢰하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께서 피눈물의 기도를 올리실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 죽음까지 각오했던 결의와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권면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홀로 영적인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용기가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약함을 다 드러내고 사랑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길을 ‘일어나 함께 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