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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사순절 (크리스천투데이)

Day 32 - 안나스의 심문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여 제일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주후 6년에서 15년 사이에 대제사장을 지낸 사람으로, 그의 다섯 아들과 지금은 사위인 가야바까지 대제사장직을 맡았습니다. 원래 대제사장은 종신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존경을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사람인데,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 권력의 하수인을 골라 대제사장으로 세웠던 비극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나스의 온 집안이 돌아가며 대제사장직을 맡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정치 권력에 아부하고 더러운 돈을 바치며 종교적 권력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안나스에게 끌고 간 것입니까? 대제사장은 누구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자인데, 왜 주님을 대적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입니까? 종교 권력이 부패하면 성직을 세습하고, 돈과 세속적 권력에 결탁됩니다. 이들은 백성들이 주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제물에서 흠을 찾아, 성전에서 제물을 비싸게 사게 함으로 폭리를 취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든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고 척결하셨습니다(요 2:13-22). 안나스에게 그런 예수님은 그 권력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존재였습니다.
 

대제사장까지 71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헤드린의 재판에는 꼭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신 19:15). 강제로 위협해서 죄를 시인하게끔 할 수 없고, 증인을 통한 증언이 합당해야 죄로 인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재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안나스는 스스로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주님을 사형시켜야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성전에서 흠 없는 제물에서 흠을 찾으려 하는 검열관처럼, 흠 없으신 주님에게서 어떻게든 흠을 찾아 넘겨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내세운 예수님의 죄목은 성전을 헐라(마 26:61)고 했다는 것과 율법을 고친다(행 6:14)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신성모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신성모독한 자는 바로 안나스라고 그 이름을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안나스가 ‘예수님의 교훈’에 대하여 묻습니다. ‘다른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떳떳하게 성전에서 전파하셨습니다.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증인이 있습니다. 그가 나와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이 불법의 법정에 끌려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이들의 논리는 근거가 사라졌고, 이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불의하고 사악한 음모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칩니다. 결박되신 주님을 향해 조롱하고 때리는 이 비열하고 악한 세력들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참으신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패할 때, 돈과 권력에 유착될 때,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되고 원수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빗나간 신앙의 모습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헐어야 할 죄가 드러났을 때, 주님을 공격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길 원합니다.